[로리더] 한국에서 발견된 최고(最古)의 왕성 유적인 백제 풍납토성의 문화재 복원을 위해 삼표산업의 레미콘공장 부지는 수용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서울 풍납동 공장을 이전해야 한다.

이번 소송은 문화재청과 서울시, 송파구가 풍납토성 복원을 위해 삼표산업의 풍납레미콘공장의 이전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풍납토성은 1925년 대홍수로 중요 유물이 다량 출토되면서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1997년 발굴조사 이후 다량의 백제 토기와 건물터, 도로 유적 등이 나왔고, 너비 43mㆍ높이 11m 규모의 성벽이 확인돼 학계에서 한성 도읍기(기원전 18년∼475년) 백제 왕성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곳에서 1978년부터 레미콘공장을 운영해온 삼표산업은 2006년 서울시, 송파구와 풍납레미콘공장 부지 매각을 위한 ‘공장부지 협의 수용 및 연차별 보상’에 합의했다. 2013년까지 매각대금 435억원을 받아 공장면적 2만1076㎡ 중 64%를 매각했다.

사진=송파구청
사진=송파구청

그런데 삼표산업은 2014년부터 입장을 바꿔 보상과 이전을 거부했다. 결국 송파구는 풍납레미콘공장 부지를 강제로 수용하는 절차를 밟았고, 2016년 2월 국토교통부는 이를 승인했다.

삼표산업은 이에 불복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서울 풍납토성 복원ㆍ정비사업에 관한 사업인정고시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 송파구는 국토부의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사업인정’이란 공익사업을 토지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사업으로 결정하는 것으로서 공익사업의 시행자에게 그 후 일정한 절차를 거칠 것을 조건으로 일정한 내용의 수용권을 설정해 주는 형성행위이다.

1심인 대전지방법원 제2행정부는 2017년 1월 (주)삼표산업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낸 사업인정고시취소 청구소송에서 “레미콘공장 자리에 실제로 성벽 등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적다”고 봐 원고 승소 판결했다.

하지만 2017년 9월부터 송파구와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가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서성벽, 석축과 함께 성문이 있던 터로 추정되는 유구들이 확인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토부가 항소했고,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허용석 부장판사)는 2017년 11월 “토지수용이 필요하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삼표산업)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풍납토성의 역사적 가치에 비추어 이를 복원ㆍ정비하기 위한 사업은 공익성이 당연히 인정될 뿐 아니라, 수용대상부지는 풍납토성 성벽의 부지 또는 성벽에 바로 인접한 부지로서, 이를 수용해 성벽 또는 해자 시설을 복원ㆍ정비하는 것은 풍납토성의 보존ㆍ관리를 위해 필요하며, 공익ㆍ사익 상호간의 비교형량 또한 비례원칙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삼표산업이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2월 28일 (주)삼표산업이 국토교통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서울 풍납토성 복원ㆍ정비사업에 관한 사업인정고시취소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ㆍ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하는데, 문화재의 보존ㆍ관리 및 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며 “그리고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곤란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회복이 가능하더라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특성이 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사업인정 등 처분에 대해 재량권 일탈ㆍ남용 여부를 심사할 때에는, 문화재보호법의 내용 및 취지, 문화재의 특성, 사업인정 등 처분으로 인한 국민의 재산권 침해 정도 등을 종합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청이 문화재의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와 원형의 보존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문화재보호법 등 관계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내린 전문적ㆍ기술적 판단은 특별히 다른 사정이 없는 한 이를 최대한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풍납토성은 백제 한성기 왕궁을 수비하기 위한 토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로, 한국에서 발견된 최고(最古)의 왕성 유적으로서 백제 한성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풍납토성은 현재 서성벽 일부 구간과 동ㆍ남ㆍ북성벽 합계 2.7㎞가량이 잔존한 상태로, 고구려 국내성, 경주의 월성, 평양의 낙랑토성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다고 평가되고 있고, 수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1,000여 기가 넘는 유구와 수만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재판부는 “발굴조사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수용대상부지 중 원고의 사옥부지에는 성벽 또는 해자 시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성벽 또는 해자 시설에 매우 근접한 위치일 것으로 추정되며, 성벽 또는 해자 시설의 복원ㆍ정비를 위해서는 이와 근접한 주변 지역 역시 수용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서울시 및 송파구는 2017년 1월경까지 풍납토성 사적으로 지정된 구역(총 면적 379,984.3㎡) 중 276,686㎡를 약 5502억 원에 매입했다. 향후 매입하기로 예정된 핵심 권역인 Ⅱ 권역 내 토지 등의 보상을 위해서 약 1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사건 수용대상부지 중 원고의 공장부지는 풍납토성 성벽부인 Ⅱ-1지구로서 풍납토성 전체 복원ㆍ정비사업의 핵심 권역에 속한다.

재판부는 “서성벽의 존재가 강하게 추정되므로, ‘철저한 고증을 통한 서성벽의 복원ㆍ정비’라는 사업의 목적은 결국 풍납토성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으로서, 원형 유지의 원칙에 부합한다”며 “이 사업은 풍납토성 복원ㆍ정비 및 활용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발굴조사는 풍납토성을 복원ㆍ정비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기본적인 업무”라고 말했다.

또 “유실된 성벽 구간의 부분적인 복원 및 정비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사업이므로, 서성벽 전체의 완전한 복원이 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이 사업의 시행이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공장 운영 중단에 따른 불이익은 영업보상 등으로 어느 정도 구제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사업인정고시로 수용대상부지가 수용됨으로써 원고에게 발생하는 사익 침해의 정도가 문화재 등의 가치 보호라는 공익에 비추어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풍납토성의 형태 등에 비추어 수용의 필요성이 적은 부분은 여러 토지에 걸쳐 남북 방향으로 길고 좁게 이어진 형상일 수밖에 없는데, 잔여지로서 활용도가 높지 않아 이 부분만을 수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원고에게 이익이라고 볼 수도 없다”며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사업인정의 공익성, 필요성, 비례의 원칙 등 재량권 일탈ㆍ남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인 참가인 송파구청장이 문화재보호법 제83조 제1항에 따라 국가지정문화재를 수용할 수 있는 사업시행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원심이, 풍납토성이 국가지정문화재라 하더라도 관리단체인 참가인 송파구청장이 수용대상부지를 수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법리에 따른 것으로서, 거기에 문화재보호법 제83조 제1항의 수용주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이번에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송파구는 집행정지 됐던 수용절차를 사업인정고시 효력 만료 전까지 추진해 삼표산업 풍납레미콘공장 이전을 실행한다는 입장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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