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은 5일 “법원과 검찰은 부적절한 동거를 빨리 청산해야 한다”며 검찰에 서울고등법원 12층에 상주하는 검사실 등 검찰공판사무 공간을 빼줄 것을 독촉하면서, 서울고등법원장에게는 당장 검찰에 퇴거조치를 하라고 촉구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본부장 조석제)는 이날 “서울고등법원장은 당장 검찰 공판1부에 대한 퇴거조치를 실시하라”는 성명을 법원내부통신망(코트넷)에 발표하면서다.

‘법원본부’는 전국의 각급 법원에서 근무하는 법원공무원들로 구성된 법원공무원단체로 옛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라고 보면 된다. 법원본부(법원노조)에는 1만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어 법원공무원을 대표하는 단체다

법원본부 서울중앙지부(지부장 박정열)는 지난 2월 20일 검찰총장, 서울고검장, 서울중앙지검장 앞으로 서울고등법원 청사 내에 있는 검찰 공판1부 철수에 대한 공문을 발송했다.

서울중앙지부에 따르면 현재 검찰이 사용 중인 공간은 서울고등법원 12층 공판1부 부장검사실 및 검사실 3곳, 기록열람ㆍ등사실 1곳, 창고 1곳 등 약 410㎡(약 124평) 이외에, 4층에는 탈의실도 추가로 사용 중이다.

서울중앙지부는 “작은 규모의 공판준비실이 아니라, 검찰청의 1개 부서 전체가 와 있는 상황이고, 서울고등법원 12층의 절반을 검찰이 상시 사용하고 있다”며 “인원은 부장검사 1명, 검사 9명, 수사관 7명, 실무관 4명, 사무원 1명 등으로 20여명 이상의 직원이 상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부는 “이들은 검찰청이 아닌 법원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으며, 청사 출입도 법원직원과 동일기능의 출입카드를 사용하고 있어, 소지한 출입카드로 판사실 등 원하는 곳으로 얼마든지 이동이 가능해 검찰직원인지 법원직원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며 “소지한 출입카드를 이용해 검사들이 판사실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된단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반면 “이런 상황과는 반대로, 현재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법 직원들은 늘어난 업무량과 인원으로 더 이상 책상을 들여 놓을 수도 없는 부서가 있으며, 어떤 부서는 과장 자리까지 책상을 들여놓게 돼 과장과 실무관이 마주보며 일하고 있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중앙지부는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돼 2018년 단체교섭을 진행해 ‘검찰공판사무과 철수’를 단체협약으로 체결하게 됐다”며 “우리 직원들이 업무공간이 없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다른 기관에 공간을 내어 준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원본부는 “노동조합이 검찰공판실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비단, 업무공간 협소의 이유만은 아니라 검찰과 법원은 절대 한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라며 “기소기관과 판결기관이 함께 있는 것은 국민 법감정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당사자주의 재판원칙 차원에서도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에 법원과 검찰의 유착관계에 대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재판이 끝나면 판사와 검사들이 어울려 식사를 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진 적이 있었다”며 “이에 대한 심각한 국민적 우려가 전달돼 각급 법원마다 있었던 검찰공판실이 대부분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전국적으로 공판검사실이 남아 있는 곳은 서울고등법원이 유일하다”고 지목했다.

법원본부는 “국민 수준이 높은 성숙도에 오르게 된 이 시점에서 아직도 법원과 검찰이 한 공간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어떠할까. 과연 현재 진행 중인 무수한 재판에 대해 공정하다고 떳떳하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을 국민들이 수긍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따져 물으며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교정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사법에 대한 불신을 어떻게 해소하겠다고 호소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양승태) 사법농단으로 불거진 국민들의 사법부 불신은 여간한 노력으로 정상화 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검찰은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수사하고, 현직 판사들에 대해 줄 소환을 예정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국민적 기대가 큰 상황”이라고 짚었다.

법원본부는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과거 판사ㆍ검사와의 유착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잘못된 관행이 유지된다면, 아무리 공정하게 수사를 하고, 재판을 했다고 한들 ‘부적절한 동거’를 이유로 국민들은 여전히 법원과 검찰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며 “작금의 화두가 검찰불신, 사법불신 아니던가. 법원과 검찰은 부적절한 동거를 빨리 청산하고, 국민들 앞에 떳떳하게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법원본부는 검찰에 발송한 2월 20일자 공문을 통해 2월 28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직접 의견을 주는 대신, 세계일보 보도(2월28일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가 법원 내에 들어가 있는 이유는 애초 법원 용지 일부가 검찰청 땅이었기 때문이다”며 “해당 토지를 법원에 제공하는 대신 공판검사실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사전 협의가 됐던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원 측이 지적도를 내밀면 잠잠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방을 빼달라는 요구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법원본부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아닐 수 없다”며 “지금의 노동조합의 요구가 정녕 법원과 검찰의 부동산 다툼이란 말인가. 언론에 보도된 검찰의 입장이라는 것이 과연 검찰측의 공식입장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백번 양보해 법원이 검찰청 땅을 사용하고 있다면, 사용료를 청구할 일이지 ‘내 땅에 건물을 지었으니 너희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은 정당하다’고 하는 것이 과연 상식이 있는 대답인가?”라고 따져 물으며 “검찰과 법원이 한 건물에서 상주하고, 검사가 마음대로 판사실을 드나들 수 있는 이 위험한 상황을 단순히 부동산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검찰 스스로 국민적 사법신뢰 회복을 조금도 생각지 않은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법원본부는 그러면서 “서울고등법원장은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장 지적도상의 문제를 정리하고, 퇴거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검찰의 주장대로 설령 법원이 검찰청 땅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진작에 행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본부는 서울고등법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앞으로 두 번째 공문을 발송했다. 법원본부 서울중앙지부는 “법원과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법원과 검찰의 유착의혹으로 비화될 수 있는 소지를 해소하기 위해 검찰과 법원 모두에게 요구한다”며 두 가지를 제시했다.

“검찰은 노동조합의 의견제출 요구에 응하고, 즉각 서울고등법원과 철수절차를 협의하라!”

“서울고등법원장은 언론에 보도된 검찰측의 입장이 사실이라면, 당장 퇴거조치를 실시하라!”

이번 성명과 관련해 조석제 법원본부장은 “판사와 검사가 공식적으로 유착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상황임에도 검찰은 심각한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 저희 노동조합은 사법불신 해소와 검찰불신 해소는 검찰공판실 철수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검찰과 법원은 기소기관, 재판기관으로서 엄격하게 분리돼 있어야 하고, 수사나 재판에 대해 한 치의 국민적 의혹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로리더 표성연 기자 desk@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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