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밀수입을 준비하다 적발된 사람의 예비행위를 밀수범과 같은 형벌로 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조항은 가혹한 형벌로, 형벌체계의 균형성에 반해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시가 30억 5670만원 상당의 위조 상품을 적입한 컨테이너를 인천항에 반입하면서 면봉을 수입하는 것처럼 적하목록을 제출했으나, 수입신고 전에 위 컨테이너가 세관직원들에 의해 적발돼, 밀수입 예비 혐의로 기소됐다.

인천지방법원은 2015년 10월 A씨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관세법, 형법을 적용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및 벌금 19억 3090만원에 처하고 압수품은 몰수한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항소심 계속 중인 2016년 8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제7항 중 ‘관세법 제271조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은 제2항의 예에 따른 정범 또는 본죄에 준하여 처벌한다’는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다.

밀수입 예비행위를 밀수죄에 준해 처벌하도록 하는 것은 책임주의원칙과 평등의 원칙에 반할 소지가 있다는 취지에서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제6조(관세법 위반행위의 가중처벌) ② 관세법 제269조 제2항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가중처벌한다.

1. 수입한 물품의 원가가 5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수입한 물품의 원가가 2억원 이상 5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8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밀수입 예비죄를 밀수죄에 준해 처벌하도록 규정한 “특가법 제6조 제7항 중 관세법 제271조 제3항 가운데 제269조 제2항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위헌 결정(2016헌가13)을 내렸다.

헌재는 “예비행위란 아직 실행의 착수조차 이르지 않은 준비단계로서, 실질적인 법익에 대한 침해 또는 위험한 상태의 초래라는 결과가 발생한 기수와는 행위태양이 다르고, 법익침해가능성과 위험성도 다르므로, 이에 따른 불법성과 책임의 정도 역시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예비행위를 본죄에 준하여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심판대상조항은 불법성과 책임의 정도에 비추어 지나치게 과중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관세법과 특가법은 관세범의 특성과 위험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여러 규정을 둬 규율하고 있으므로 관세범의 특성과 위험성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밀수입 예비행위를 본죄에 준하여 처벌해야 할 필요성이 도출된다고 볼 수도 없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구체적 행위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고려한 양형판단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가혹한 형벌로서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특히 “동일한 밀수입 예비행위에 대해 수입하려던 물품의 원가가 2억원 미만인 때에는 관세법이 적용돼 본죄의 2분의 1을 감경한 범위에서 처벌하는 반면, 물품원가가 2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심판대상조항에 따라 본죄에 준하여 가중처벌을 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마약범의 경우에는 특가법의 개정으로 예비에 대한 가중처벌규정이 삭제되었고, 조세포탈범의 경우에는 특가법에서 예비죄에 대한 별도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점에 비추어 밀수입의 예비죄에 대해서만 과중한 처벌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적용되는 밀수입 예비죄보다 불법성과 책임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는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외환유치, 여적 예비죄나 살인 예비죄의 법정형이 심판대상조항이 적용되는 밀수입 예비죄보다 도리어 가볍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심판대상조항이 예정하는 법정형은 형평성을 상실해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형벌체계의 균형성에 반해 헌법상 평등원칙에 어긋나는 규정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헌법재판소 공보관실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이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에 위배되고 형벌체계상의 균형을 잃은 자의적인 입법이라거나 평등원칙에 반하여 헌법에 반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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