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사고로 크게 다쳐 지능이 정신연령 8~12세 정도로 나타나 지적장애로 등록받고 재활치료를 받는 상황에서, 사귀던 여성이 혼인신고를 하자고 제안해 혼인신고가 이뤄졌는데, 법원은 혼인무효라고 판결했다.

부산가정법원과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5년 12월 공사장 작업 중 추락해 두개골 함몰 등 크게 다쳐 수술을 받고, 이후에는 인지저하, 보행장애 및 일상생활동작수행 장애로 재활치료를 받다가 2016년 9월 지적장애 3급으로 등록됐다.

이 사고 이전에 A씨와 동거한 적이 있던 B(여)씨는 2016년 11월 A씨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혼인신고를 하자고 제안하며 A씨를 데리고 나가 부산 기장군의 한 면사무소에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A씨를 사랑하는 B씨의 이런 안쓰러운 상황에 A씨의 형이 동생인 A씨와 혼인신고를 한 B씨를 상대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부산가정법원 주성화 판사는 “피고들(A, B) 사이에 2016년 11월 OO면장에게 신고한 혼인은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법원의 진료기록감정 결과에 의하면, A씨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물건의 이름대기, 단순 계산, 기억회상 등의 수행능력이 저하돼 있고, 재활치료를 받던 병원 진단서에 의하면 ‘스스로의 판단 하에 혼인신고는 불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또한 법원의 A씨에 대한 신체감정 결과에 의하면, A씨의 현재 지능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지능은 정신연령 8~12세에 해당하고, ‘혼인’ 또는 ‘결혼’의 개념에 대해 단어가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특정 단어로서의 매우 제한적이고 사전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815조 제1호가 혼인무효의 사유로 규정하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란 당사자 사이에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ㆍ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의 합치가 없는 경우를 의미한다.

주성화 판사는 “혼인은 부부관계의 창설을 목적으로 하는 신분행위이고, 가족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행위로서, 한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결정사항인 점, 만 18세에 다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으나, 미성년자인 경우나 질병, 장애 등으로 인해 정신적 제약이 있는 피성년후견인의 경우 부모 또는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혼인의 합의가 유효하려면 일반적인 재산상 법률행위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상당한 정도의 정신적 능력 또는 지능이 있어야 의사능력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주 판사는 “피고들이 함께 면사무소에 가서 직접 혼인신고서를 작성했고, A가 결혼의 의미를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하고 있었으며, 가령 피고들이 사고 이전에 사실혼관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혼인신고 당시 A의 정신적 능력과 지능상태를 보면 A에게는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ㆍ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능력은 결여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봤다.

혼인신고 당시 B의 ‘자기야, 내가 누구야? 응?’이란 질문에 A가 ‘와이프’라고 답하고, B의 ‘그래 그럼 나하고 혼인신고 하러갈까?’라는 질문에 A가 ‘응’이라 답한 사실, B가 ‘그래 가서 혼인신고 하고 오자. 그래야 같이 살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자, A가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주 판사는 “그러나 A가 B를 와이프라고 호칭하고 혼인신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답변을 했다고 하더라도 사고의 정도, 사고 이후 A의 지능과 의사능력의 정도에 비추어 혼인신고 당시 B와 대등한 입장에서 혼인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B씨는 혼인신고를 하고 일주일 뒤에 부산가정법원에 A씨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주성화 판사는 그러면서 “A는 향후 B와 대등한 관계에서 혼인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 채 B의 주도하에 혼인신고에 나아갔다는 점에서도 혼인신고 당시 A에게는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ㆍ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능력은 결여됐다고 볼 것”이라며 “따라서 피고들의 혼인신고는 민법 제815조 제1호에 따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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