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의혹이 외부로 알려지는 촉매가 됐던 이탄희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는 “사법개혁이 법원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법원개혁은 법원만이 해야 되는 일로 오해되는 측면이 있다”며 “좋은 판사들과 공직사회와 시민들이 다 같이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탄희(42, 사법연수원 34기)는 30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다.

JTBC 방송화면 우측이 이탄희 판사
JTBC 방송화면 우측이 이탄희 판사

법원에 남아서 좋은 재판을 해달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을 텐데 사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 이탄희 판사는 “개인적으로 지난 2년 동안 너무 마음고생을 좀 한 것 같다. 이번 정기인사가 되면 이제는 제가 더 이상 전력을 다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법농단)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길었고, 그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이 소진된 것 같다”고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내비쳤다.

이탄희 판사는 “제가 처음 법원행정처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좀 문제가 있다고 느꼈던 것은 2017년 1월 중순쯤이고, 법원행정처 발령이 나고 그 이후에 알게 된 것들이 어찌 보면 평범한 판사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고 말했다.

이탄희 판사는 2017년 2월 9일 판사들에게는 승진을 위한 엘리트 코스로 알려진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2월 20일자)을 받았다.

방송화면. 이탄희 판사
방송화면. 이탄희 판사

이 판사는 이어 “법원행정처에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관리가 되고 있고, 제가 그걸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야 하고, 또 일선 판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허위로 만들어낸 논리들을 전파하는 역할을 판사가 해야 되고, 또 국제인권법연구회라는 판사들의 학술단체가 있었는데 그때는 법원행정처에서 와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없애기로 하는 결정이 됐다는 이런 이야기를 제가 전임자에게 인수인계 받는 과정에서 설명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일들이 누적이 됐고 제가 10년 동안 판사 생활을 짧지 않게 했는데 제가 알고 있었던 법원과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해 온 법관 생활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법원행정처에 들어가서 이 일들을 할 것인가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당시 고민을 떠올렸다.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해 이탄희 판사는 “판사들이 일선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었다. 내용은 소위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로 예정돼 있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가 있었는데, 학술대회에서 설문조사 결과가 대외적으로 크게 공표되는 것을 행정처에서 썩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법원행정처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없애기로 한 ‘와해’ 이유를 이렇게 봤다.

그는 이어 “그래서 행사 자체를 취소하고, 취소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축소해 달라 그런 요청이 처음 있었고, 제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제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 법원행정처에서 저하고 가까운 다른 분을 통해서 ‘뒷조사든 뭐든 하여튼 국제인권법연구회 관련된 일은 너는 시키지 않겠다. 그럴 테니 다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들어와라’ 이렇게 제안한 적이 있었다”며 “저는 솔직히 그것을 듣고 좀 화가 났죠. 왜냐하면 저는 이것을 판사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사직서를 냈던 것인데, 법원행정처에서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계속 하면 된다. 마치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라고 법원행정처의 인식을 지적했다.

이탄희 판사는 “법원 조직의 문제라기보다는 법원행정처의 문제다. 법원행정처는 재판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판사들은 재판을 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법원행정처에 판사가 있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그러다보니 법원행정처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판사들의 문제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는 측면도 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조금 아쉽고 이번 기회에 법원행정처와 일선 법원이 꼭 분리가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단 책임을 질 분들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 되겠지만, 앞으로 건설적으로 어떤 제도를 만들어서 관료적인 문화에 대해서 나름대로 오랜 기간 동안에 저항을 하고 진실을 밝혀지는 데 기여했던 판사님들이 조금 더 주목을 받는 그런 방향으로 개선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방송화면
방송화면

사법개혁에 대해 이탄희 판사는 “저는 사법개혁이 사실 법원의 힘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삼권분립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법원의 개혁은 법원만이 해야 되는 일로 좀 오해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삼권분립은 삼권분리와는 다른 것이다. 분립은 설 립(立)자고 분명히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3개의 기관이 서 있어야 된다. 똑바로 서 있지 않으면 원래 헌법이라는 돌을 기워야 되는데 하나라도 누워 있으면 이 돌이 굴러 내려서 표류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한민국 공직사회 전체가 표류하는 것이고, 우리 국가 전체가 손해를 보는 것이니까, 누워 있는 기관은 세울 수 있도록 다른 기관들과 시민들까지도 같이 협력하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탄희 판사는 “그 방식을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식으로 하면 된다”며 “그래서 삼권분립이라는 용어를 그렇게 오해하지 않고, 좋은 판사들과 공직사회와 시민들이 다 같이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일, 그런 일들이 좀 앞으로 많이 찾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한편,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1월 24일 구속됐고, 사법농단의 핵심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작년 10월 27일 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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