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개혁의 최대 적기는 바로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국회는 부여받은 역사적 소명을 다하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16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사법행정개혁에 대한 의견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자리에서 강조된 대목이다.

좌측부터 송상교 민변 사무총장, 김지민 민변 사법위원장, 한상희 참여연대 실행위원,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좌측부터 송상교 민변 사무총장, 김지민 민변 사법위원장, 한상희 참여연대 실행위원,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

기자회견 사회는 송상교 민변 사무총장(변호사)이 진행했고, 김지미 민변 사법위원장이 ‘사법행정개혁 논의 경과와 의견서 제출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는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사법행정개혁의 핵심 3대 과제를 발표했고,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제대로 된 사법행정개혁을 위한 촉구 발언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두 단체는 지금과 같은 관료적 사법행정구조를 타파하고 사법행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법행정위원회 설치’ㆍ‘법원행정처 탈판사화 명문화’ㆍ서열식 인사구조의 핵심인 ‘고등부장 제도 전면 폐지’ 등 3대 법원개혁 과제를 제안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사법농단의 핵심 원인이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제왕적 사법행정권,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판사의 관료화, 서열을 강화해서 판사를 줄 세우는 인사구조 등 한국 특유의 관료적 사법행정구조에 있다”고 지적하며, “사법농단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법관 관료화를 해소하는 제도적 개혁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국회 사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법원개혁을 법원에만 맡겨둔 채 국민에 의한 개혁을 추동해내지 못한다면 수십 년 간 형성돼온 사법행정구조의 폐단을 끊지 못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참여연대와 민변은 <사법행정개혁에 대한 의견서>를 통해 제1순위 법원개혁 과제로 첫째,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합의제기구(사법행정위원회) 설치를 주장했다.

두 단체는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에게 판사 임명, 연임, 퇴직, 배치부터 근무평정, 보직, 전보, 그리고 사법정책, 사법지원 등 사법행정의 모든 것을 관할하도록 하고 있다”며 “대법원장에게 사법행정권한을 집중시키는 제도는 대법원장 1인의 도덕적 해이와 욕망에 따라 언제라도 법원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서응ㄹ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위해 실질적 권한을 가진 합의제기구인 ‘사법행정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법행정위원회가 대법원장의 거수기로 형해화 되지 않으려면 실질적 권한을 갖고 법원사무처를 지휘ㆍ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원회 구성에 있어 외부위원을 과반수 이상으로 하고,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중 일부(적어도 1/3)는 상근하는 구조를 둬 민주적 통제와 견제,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두 단체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국회 사개특위에 제출한 대법원안의 경우, 대법원장의 지휘감독 하에 있는 사무처장이 사법행정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이 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사법행정위원회를 형해화 시키려는 시도와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법원장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합의제기구가 되려면 사법행정위원회가 법원사무처를 실질적으로 지휘ㆍ감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대법원장이 아닌 사법행정위원회가 법원사무처장을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두 단체는 둘째, ‘관료 판사 양성소’로서의 법원행정처의 문제점을 짚으며, ‘법원행정처 탈판사화’를 명문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단체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는 상근법관에게는 ‘사법관료’로서의 역할이 부여돼 왔고, 상명하복의 관료적 생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판사들이 결국 이번 사법농단 사태의 ‘키 플레이어’가 됐다”고 비판했다.

또 “전체 판사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법원행정처 상근법관은 자타 공인 ‘사법부 엘리트’이며,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경력이 향후 승진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판사 사회에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법원행정처가 ‘관료 판사 양성소’로 전락했다는 점, 일선 판사들 사이에 재판업무보다 사법행정업무를 우위에 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상급법관이 존재하는 법원행정처의 기형적 구조는 ‘행정을 하는 판사’를 ‘재판을 하는 판사’ 보다 우위에 두게 하고, 법관 스스로 관료조직에 편입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분위기를 형성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법행정의 재판에 대한 우위를 보여주는 핵심조직이자 법관을 관료적 습성에 물들게 하는 법원행정처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두 단체는 “법원행정처는 해체하고, 단순한 지원기관인 법원사무처가 설치되어야 하며, 특히 법원사무처에 상근법관이 임명되지 않도록 탈판사화를 법으로 명문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법농단 사태 해결을 위한 법원개혁의 핵심과제인 탈판사화 조항이 정작 대법원안에는 누락돼 있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장이 임기 중 탈판사화를 다짐했다고 해도, 법률에 명시되지 않는 개혁은 흐지부지되는 것이 대부분인 만큼 법원의 의지에 기대지 않고 법원조직법 제71조 제4항에 ‘판사’ 근거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고등법원 부장판사 즉 ‘고등부장’을 2017년까지 폐지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으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고등부장 보임을 계속해 개혁을 후퇴시켰다고 예로 들었다. 국회에서 제도개혁을 법으로 명문화하지 않고 법원에 맡겨둘 경우 개혁의 실행을 담보할 수 없다는 교훈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이다.

즉 법원개혁 핵심과제의 이행을 법원의 의지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국회가 법률로 명시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법원행정처를 잇는 관료조직인 ‘법원사무처’의 탈판사회가 법률에 명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법행정위원회가 사법행정에 관한 권한을 가지더라도, 실질적으로 법원사무처는 대법원장의 지휘 하에 위계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법원사무처에 직업법관이 들어가는 순간 기존 법원행정처를 기준으로 한 탈판사화 논의는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면서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셋째, 법관 서열식 인사구조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고등부장’ 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했다. 고등부장 직위를 정점으로 하는 서열식 법관 인사구조는 승진에 목매는 ‘법복 입은 관료’를 낳는 근본 원인이 된다는 지적에서다.

헌법과 법률은 법관을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지방법원 배석판사 → 지방법원 단독판사 → 고등법원 배석판사 → (대법원 재판연구관) →지방법원 부장판사(지방부장) → 고등법원 부장판사(고등부장) → 법원장 → 대법관 → 대법원장’의 단계적 서열구조가 형성돼 있다.

두 단체도 “법원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부터 지방법원 배석판사까지 줄세우기식 인사로 수직적 서열구조를 형성하고, 이 과정에서 판사들이 선망 받는 직위를 쟁탈하기 위한 경쟁구조에 편입돼 사법행정권자의 눈치를 보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비판했다.

또 “고등부장 제도의 폐지는 판사가 법원 내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해 재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법관의 관료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고, 법관의 장기근속이 가능한 법조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법조일원화 및 평생법관제의 정착에도 어울린다”고 말했다.

따라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하고, 법관의 특수보직이나 파견직 등 특혜ㆍ선발성 인사를 축소하며, 근본적으로는 법관의 대규모 인사를 없애 서열식 인사구조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법관 관료화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법관의 장기근속이 가능한 법조환경을 조성하고, 나아가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강화될 것이라고 봤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등부장 폐지가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추진되다가 양승태 대법원장이 보임을 다시 시작해 개혁을 후퇴시켰고, 이는 사법부의 관료화로 이어져 결국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법의 신뢰가 추락하게 된 점 점을 상기시키며, 고등부장 폐지가 법률로 명문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이 국회에 자체 개혁안을 제출한 것과 관련, 민변과 참여연대는 “가장 중요한 사법행정 개혁에서 법원 내부에 편향된 태도를 보이며 대폭 후퇴된 방안을 제출했다”며,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한 대법원의 셀프개혁 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최초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로 명명된 사법농단의 실태가 세상에 드러난 이후로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경과했으나, 사법농단 사태의 본질적 해결은 요원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행정권, 관료적 사법행정은 이번 사법농단 사태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며 “한국 법원에서 수십 년 동안 강고한 구조로 자리 잡은 사법행정의 문제점을 개혁하는데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놓은 시점인 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설치돼 활동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사법행정개혁의 최대 적기는 바로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두 단체는 “국회 사개특위는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법행정위원회 설치, 법원행정처 탈판사화의 명문화, 서열식 인사구조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고등부장’ 제도의 완전한 폐지는 법원의 핵심 개혁과제로 먼저 이행해 성과를 내야 한다”며 “이는 국회가 부여받은 역사적 소명”이라고 책무를 부여했다.

끝으로 민변과 참여연대는 “이번 양승태 사법농단 해결을 위한 법원개혁의 핵심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법원개혁을 위해 학계와 변호사 등 법조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계속 모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제대로 된 법원개혁안 마련하라”, “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방안 마련하라”는 구호를 제창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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