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판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방청객에게 “주제 넘는 짓을 했다”고 말했다면 모욕적인 발언으로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이에 소속 법원장에게 해당 판사의 주의조치와 재발방지 교육을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방의 모 대학 B총장은 2014년 11월부터 2016년 7월까지 교비 관련 배임 및 여교수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규명을 요구하는 A교수(진정인)과 강제추행 피해자인 여교수에게 수차례 중징계 처분을 했으나, 진정인과 여교수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모두 징계처분 취소결정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A교수는 B총장의 재판을 방청하게 됐는데, 재판과정에서 B총장이 허위사실을 주장하고, B총장으로부터 회유된 교직원들이 사실과 다르게 증언하는 것을 수차례 목격함에 따라 이를 바로 잡고자 2017년 2월과 5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탄원서로 작성해 증거자료와 함께 법원에 제출했다.

그 직후 2017년 5월 26일 공판기일에 재판장은 A교수가 방청석에 없어서, 방청객들을 향해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고 피해자도 아닌 제3자가 단순히 탄원서를 제출하는 것은 괜찮으나, 이를 넘어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증거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점과 왜 허용될 수 없는지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특히 피해자인 동료교수와 변호사에게 그와 같은 내용을 A교수에게 반드시 전달해 재차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전해들은 A교수는 2017년 5월 30일 재판부에 사과의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2017년 6월 13일 대학교 B총장의 형사사건(배임 및 성추행) 관련 재판을 방청했다.

그런데 재판장은 방청석에 앉아 있던 A교수를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더니 30∼40명의 교직원, 학생, 일반인 등이 있는 자리에서 10여 분간 수차례 반복적으로 “주제 넘는 짓을 했다”고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또한 “지금까지 제출한 모든 진정서와 탄원서를 찾아가라”고 했다.

이로 인해 A교수는 “모멸감에 따른 충격으로 이후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음은 물론 대인기피 증세를 앓을 정도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B총장에 대한 재판은 사학비리, 총장과 여교수간의 강제추행 또는 불륜관계 여부에 관한 진실게임 등으로 주목을 끌면서 재판 과정이 언론에 자주 기사화됐고, 재판 진행 중 여러 사람들이 20여 차례 탄원서 등을 제출하기도 했는데, 증거자료를 함께 제출한 A교수 외 다른 탄원인들에 대하여는 별달리 지적한 바가 없었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진정인(A교수)의 행위가 피고인(B총장)의 형사소송법상 권리를 심각히 침해하고 재판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판단했고, 재판장으로서 A교수의 계속적인 탈법적 행위를 제지할 필요가 있어, 2017년 6월 13일 공판기일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진정인을 호명해 잠시 일어서 달라고 한 다음,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증거자료를 제출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관해 형사소송법 관련규정 등을 들어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와 같은 행위를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재판장은 “재판부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진정인이 B총장의 유죄를 입증하겠다며 증거서류를 계속적으로 제출하는 것은 검사가 유죄를 입증해야 할 일을 본인이 대신하겠다는 것으로서 ‘주제 넘는 짓(행동)’이고 이는 공소유지를 위해 법정에 참여하는 검사를 무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진정인이 제출한 증거서류들은 모두 반환받아 검찰에 제출하기 바란다. 그리해서 검사가 검토 후 정식으로 증거로 신청하면 형사소송법상 정해진 절차를 거쳐 증거로 삼겠다”고 했다.

재판장은 “이후 A교수는 자신이 제출한 탄원서와 증거자료들을 모두 반환받아 갔고 재판장의 위와 같은 소송지휘권 행사에 대해 이의하지 않았는데, 2017년 9월 피고인 B총장의 강제추행죄 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자, 그 이후부터 문제를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재판장은 “본인은 재판장으로서 진정인의 행동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명확히 이해시키기 위해 자세히 설명했고 그 과정에서 ‘주제 넘는 짓(행동)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진정인 개인의 인격을 폄훼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상당 시간을 할애해 진정인에게 했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지 지나가는 특정 몇 마디 단어를 두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재판장의 의도는 위와 같은 말들의 전후맥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조사에서 2017년 6월 13일 법정에 여성인권단체 임원으로 방청한 C씨는 “판사가 머리가 하얀 남성 교수를 불러서 일어나게 하고는 10여분이 넘도록 수차례 탄원서 낸 것을 지적하고, ‘주제 넘는 짓을 했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쓰면서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고, 탄원서를 찾아가라고 했다. 현장에서 30년 넘게 인권운동을 하고 법정에 드나들었지만 그날처럼 재판하는 것은 처음 봤다. 저도 탄원서를 많이 제출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저렇게 법정에서 창피와 수모와 인격모독을 당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법정에 있었던 대학생도 “판사가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참관하고 있는 중에 한 교수를 세우고는 탄원서를 여러 차례 넣은 것에 대해 주제 넘는 짓이라고 반복해 말하며 마치 혼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여태까지 냈던 탄원서를 찾아가라고 했다. 한 사람을 여러 사람 앞에 세워 모욕감을 주고 인격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피진정인(재판장)은 “본인은 재판장으로 진정인에게 형사소송법의 증거절차를 준수하도록 소송지휘권을 행사하면서 ‘주제 넘는 짓(행동)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진정인의 인격을 폄훼하려는 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대학교수 A씨가 낸 ‘판사의 모욕적인 발언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사건에서 인격권 침해라고 판단했다고 15일 밝혔다.

인권위는 “비록 피진정인이 형사사건 재판장으로서 형사소송법의 증거절차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이를 위반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진정인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위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피진정인의 언행은 사회상규 상 허용되는 범위를 일탈해 헌법 제10조에서 연유하는 진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 이유는 “통상적으로 ‘주제 넘는 짓(행동)을 한다’라는 말은 어른이 나이 어린 사람을 나무 랄 때 사용하는 표현인 점, 피진정인의 나이는 40대 후반인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후반의 진정인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위와 같은 표현한 점, 이로 인해 진정인이 심한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하고 있고, 당시 법정에 있었던 학생 및 중년의 일반인 참고인들 또한 이러한 피해감정에 공감을 표하고 있는 사정에 비추어 위 표현이 진정인의 사회적 평판이나 자긍심 등 자존감을 훼손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인권위는 이에 유사사례의 재발방지를 위해 피진정인의 현 소속 지방법원장에게 피진정인에 대해 주의조치 하도록 하고, 사건 발생 당시의 법원장에게는 유사사례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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