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11일 자신이 몸담았던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입장을 발표했다.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건, 양 전 대법원장이 헌정사상 처음이다.

법원본부
대법원 정문 담벼락에 올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본부 간부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대법원 청사 내에서의 기자회견을 저지하기 위해 전날 간부들 소집령을 발령했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본부장 조석제)는 대법원 정문 안쪽에 집결한 후, 양 전 대법원장이 입장을 밝히는 동안 연신 “양승태를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검찰청으로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법원본부)
대법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검찰청으로 향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사진=법원본부)

이날 오전 9시경 대법원 정문에 도착해 그랜저 승용차에서 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입장을 담담하게 밝혔다.

<다음은 입장 전문>

무엇보다 먼저, 제 재임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일로 인해서 국민여러분께 이렇게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또 여러 사람들이 수사당국으로부터 조사까지 받은데 대해서도 참으로 참담한 마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으로, 따라서 그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자리를 빌어서 제가 국민여러분께 우리 법관들을 믿어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고 싶습니다.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국민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봉직하고 있음을 굽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건에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자기들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법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고, 저는 그 말을 믿고 있습니다.

나중에라도 만일 그 사람들에게 과오가 있다고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므로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저는 오늘 (검찰) 조사과정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기억나는 대로 가감 없이 답변하고, 또 오해가 있으면 이를 풀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조명되기를 바랄뿐입니다.

다시 한 번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이런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앞으로 사법부의 발전이나 그를 통해 나라가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대법원 청사 안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외치는 법원본부 간부들
대법원 청사 안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외치는 법원본부 간부들

<다음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 대법원 기자회견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굳이 여기서 입장 발표하는 이유가 어떻게 되나?

양승태 =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기 보다는, 제 마음은 대법원에서 전 인생을 법원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법원에 한번 들렀다가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다.

☞ (대법원) 여기서 기자회견하는 게 후배 법관들에게 부담을 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나?

양승태 = 아까 말씀드렸듯이 편견이나 선입관 없는 시선에서 이 사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해 6월 기자회견에서는 부당한 인사개입이나 재판개입은 단연코 없었다는 입장이었는데 여전히 같은 입장인가?

양승태 = 그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 하지만 검찰수사에서 관련 자료들이나 증거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부분도 여전히 같은 입장고수하나?

양승태 = 제가 누차 이야기했듯이 그런 선입관을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제 조사시간이 돼서, 검찰 출석 시간이 다가와서 부득이 이만 그치도록 하겠습니다.

대법원 청사 안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본부
대법원 청사 안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법원본부 간부들

법원본부 “여기는 당신의 죗값을 심판해야 될 법원,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라”

한편, 대법원 정문 청사 안에서는 법원본부 간부들이 집결해 현수막을 펼치고 피켓을 들고 연신 “양승태를 구속하라”고 외쳤다.

‘법원본부’는 전국의 각급 법원에서 근무하는 법원공무원들로 구성된 법원공무원단체로 옛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라고 보면 된다. 법원본부(법원노조)에는 1만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어 법원공무원을 대표하는 단체다.

조석제 법원본부장
대법원 청사 안에서 목청을 높인 조석제 법원본부장

특히 왼손에 “근무하기 부끄럽다. 사법적폐 청산하고 양승태를 구속하라!”는 팻말을 들고 마이크를 잡은 조석제 법원본부장은 확성기를 통해 “피의자 양승태에게 경고한다. 지금 여기는 대법원이다. 당신의 죗값을 심판해야 될 법원이다”라고 주지시켰다.

조 본부장은 “전직 대법원장이 아니라 검찰에서 조사를 받아야 할 피의자 신분이다. 그런 사람이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건 온당치 않다”며 “무엇을 노리고 기자회견을 하느냐. 지금 당장 기자회견을 멈추고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조석제 법원본부장은 “이제 더 이상 법원을 욕되게 하지 말라. 사법농단으로 사법부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우리 사법부 구성원들이,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이제는 사법농단을 인정하고 죗값을 받아라”고 질타했다.

조 본부장은 거듭 “피의자 양승태에게 경고한다. 여기는 더 이상 당신이 근무하던 대법원이 아니다. 당신의 죗값을 심판해야 될 법원이다. 그런 사람이 검찰 조사 당일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용납될 수 없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에 애정이 남아 있다면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아있다면 기자회견을 중단하고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라”며 “이것이 무너진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을 위한 법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다”라고 지적했다.

조석제 법원본부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자신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사죄하라. 그것만이 사법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고 목청을 높였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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