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신종철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9일 국가정보원 댓글공작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가정보원법 위반죄와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대해 일부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2013년 6월 기소 후 4년 10개월 만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두번이나 판단을 받으며 최종적으로 종결됐다.

또한 함께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 대해서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피고인 원세훈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에 대해서는 김창석, 조희대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

피고인 원세훈은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명은 전 국가정보원 3차장, 민병두는 전 국가정보원 3차장 직속 심리전단장이었다.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산하 사이버팀 직원들은 피고인들의 재직 기간이던 2009년경부터 2012년경까지 사이버 공간에서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 찬반 클릭, 트위터(이하 통틀어 ‘사이버 활동’)를 이용해 대통령이나 집권여당을 찬양ㆍ지지하고, 야당이나 야권 성향의 정치인을 비방ㆍ반대하는 의견을 대량으로 유포했다.

이 사건은 이른바 ‘국가정보원 댓글조작’으로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이로 인해 피고인들은 정치관여 활동에 따른 국가정보원법 위반과 선거운동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제1심인 서울중앙지법(사건번호 2013고합577)은 2011년 9월 11일 국가정보원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 공직선거법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해 원세훈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이종명과 민병두에 대해서는 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을 무죄로 판단하자 현직 부장판사가 판결을 강하게 비판하는 등 당시 법원 안팎에서 파장이 컸다.

항소심인 서울고법(사건번호 2014노2820)은 2015년 2월 9일 제1심 판결을 파기해 국가정보원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일부 유죄, 공직선거법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로 판단해 원세훈에 대해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이종명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 민병두에 대해서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했다.

사건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이 사건을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사건번호 2015도2625)는 2015년 7월 16일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대법원은 핵심 증거 중 일부가 증거로 사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를 토대로 사이버 활동의 범위에 관해 사실인정을 잘못했고, 사실이 불확정 된 상태에서 대법원이 판단할 수 없음을 이유로 제시했다.

파기환송을 맡은 서울고법(사건번호 2015노1998)은 2017년 8월 30일 파기환송 전 항소심에 비해 국가정보원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더 넓은 범위에서 일부 유죄, 공직선거법에 대해서는 더 좁은 범위에서 일부 유죄를 인정해 원세훈에 대해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이종명과 민병두에 대해서는 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과 자격정지 2년6월을 선고했다.

이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검찰이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은 다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했다.

사건의 쟁점은 파기환송 후 항소심이 인정한 것과 같이 사이버팀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 중 일부가 국가정보원 직원의 직위를 이용해 정치활동에 관여한 행위로서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것이거나, 제18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에 해당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전제로, 사이버팀 직원들에 의한 공직선거법 위반 부분이 피고인들과의 공모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여부가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특히 원세훈과 이종명은 국가정보원의 원장 또는 상급간부로서 사이버 활동을 직접 수행하거나 지시하지 않았고, 각각의 사이버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가담 여부에 대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대법관 11명의 다수의견은 피고인들의 공모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공모공동정범의 법리에 따를 때 실행행위자가 아니더라도 공동정범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인 이상이 공동 가공하는 공범관계에서 공모는 전체 모의과정이 없더라도 여러 사람 사이에 범죄를 실현하려는 의사의 순차적ㆍ암묵적 결합이 이루어지면 성립한다고 봤다.

또 범죄구성요건이 되는 행위를 직접 분담해 실행하지 않은 사람도 범행에 공동으로 가담할 의사를 갖고, 범죄 실행의 중요한 일부 기능을 분담했다면 실행행위자와 함께 공범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공모관계를 인정하려면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지만, 피고인이 이를 부인하더라도 이와 상당한 관련성 있는 간접사실이나 정황사실에 의해 증명할 수 있다면서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이와 함께 대법원은 “국가정보원의 조직과 업무수행의 체계, 사이버팀 직원들의 활동 모습과 방법, 피고인들의 지위와 역할 등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이 실행행위자와 순차로 공모해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국가정보원은 엄격한 상명하복 관계가 존재하는 정보기관으로서, 피고인들이 사이버팀 직원들의 활동 내역을 잘 알고 있었고, 직원들은 국정원장과 상급자들로부터 순차로 하달 받은 업무상의 지시ㆍ명령에 복종해 그 업무를 수행하고, 처리 결과를 상급자와 원장에게 보고했다.

대법원은 “사이버팀 직원들의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는 국가정보원의 예산과 활동 역량을 배경으로 주어진 업무 형태로 조직적ㆍ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사이버팀 직원들이 업무로 수행한 사이버 활동을 직원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일탈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원은 “피고인들은 사이버팀 직원들이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를 할 때에 그와 관련된 지시를 하거나 보고를 받고 이를 승인함으로써 순차로 범행에 대해 공모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가정보원 내부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인정된 내용과 같은 취지로 집권여당의 정책성과를 홍보하고 야당 또는 그 소속 정치인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이들을 공박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러한 회의석상에서의 지시는 사이버팀 직원들의 업무지침이 됐다.

원세훈은 인터넷 공간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반복적으로 지시했고, 범행을 주도한 사이버팀의 조직을 확대ㆍ개편하기도 했다.

또 원세훈은 제18대 대통령선거 국면에 접어 든 후 정치권 등 외부에서 사이버팀에 의한 불법적인 선거운동에 관한 의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직원들의 불법 활동 여부를 점검ㆍ단속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전과 같이 집권여당에 대한 홍보 활동 등을 계속해 나갈 것을 직원들에게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민병두는 사이버팀 직원들의 활동에 대해 직접 지시ㆍ감독하고 활동 내역을 보고받음으로써 사이버팀 직원들과 공모관계에 있고, 원세훈과 이종명은 부하 직원인 민병두로부터 사이버팀의 활동 내역을 보고받고, 그 업무 방향에 대해 지시함으로써 민병두를 거쳐 사이버팀 직원들의 업무 수행을 계획적으로 조종하거나 촉진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 김창석, 조희대 대법관 반대의견

두 명의 대법관은 피고인들의 공모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피고인 원세훈과 이종명에 대해서는 선거운동에 관해 사이버팀 직원들과 공모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민병두와는 달리, 원세훈과 이종명에 대해서는 사이버팀 직원들 사이에는 제18대 대통령선거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의 업무지시 및 보고가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고, 선거운동에 관해 공모했다는 점을 증명할 직접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두 대법관은 “다수의견이 공모사실을 인정하는 근거로 제시한 여러 간접사실 내지 정황사실은 피고인들이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하는 선거운동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증거로는 부족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대법관은 “피고인들의 공직선거법 위반죄에 관한 공모 여부에 대해서는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다른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두 대법관은 “원세훈은 제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들의 출마선언이 시작될 무렵부터는 국가정보원의 내부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선거에 개입하지 말 것을 반복적으로 지시한 사실이 있고,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는 사이버 활동의 규모가 국가정보원 차원에서의 조직적 개입이라고 보기에는 미미한 수준이고, 오히려 선거일에 가까워질수록 그 발생 빈도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 판결의 의의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국정 홍보라는 명목 하에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에서 인터넷 게시글, 댓글, 찬반클릭, 트위터 등을 수단으로 정부 정책 등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야당 등 반대 세력을 비방함으로써, 당면한 선거에서 집권여당 및 그 소속의 대통령후보자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시도를 불법적인 정치관여 활동 및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로 인정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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