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판사 출신 박판규 변호사가 ‘양승태 사법농단’ 사건으로 첫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지시 등이 부적절하지만, 죄는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법리적인 주장이라기보다 간절한 바람을 표현한 것으로, 애잔하다”고 측은함을 나타냈다.

박 변호사는 “임종헌 전 차장을 처벌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다.

토론회에 참석한 판사 출신 박판규 변호사(맨앞)
토론회에 참석한 판사 출신 박판규 변호사(맨앞)

임종헌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실장, 차장으로 근무하며 사법행정권 남용 즉 ‘사법농단’ 의혹 전반에 개입하며 핵심 실무책임자로 의심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10월 23일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공무상 비밀누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26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열어 심리한 뒤, 다음날(27일) 새벽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임민성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영장실질심사 당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은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자신의 지시 등이 부적절하지만, 죄는 되지 않는다”고, 또 법원행정처 심의관(판사)들을 동원해 재판개입 문건 등을 작성한 행위에 대해선 “심의관들은 복종의 의무가 있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박판규(법무법인 현진) 변호사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길을 끈다.

박판규 변호사는 제4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37기를 수료하고 판사로 임관해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수원지방법원에서 근무했다.

박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참여연대, 국회의원 박주민 의원, 박지원 의원, 송기헌 의원, 채이배 의원이 지난 6월 13일 국회에서 공동 주최한 “법원행정처의 추가 문건 공개 등을 중심으로 ‘사법농단 실태 톺아보기’ 긴급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왼쪽 위에서 세번째가 박판규 변호사. 이날 토론자로 참여했다.

박판규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임종헌 전 차장 측의 “부적절하긴 했지만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언급하면서 “사법농단 수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분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 주장의 핵심은 재판개입에 관한 각종 행위들이 실제 재판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고, 직권남용죄에는 미수범 처벌규정이 없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인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재판개입으로 의심되는 행위들은 몇 단계의 행위로 이루어진다”며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최초의 지시행위

2. 재판개입의 내용이 포함된 문건작성 지시행위

3. 문건을 작성한 행위

4. 문건에 따라 해당 재판부나 연구관에게 접촉할 것을 지시한 행위

5. 심의관 등이 재판부와 접촉하여 재판절차나 내용의 변경을 요청한 행위

6. 재판부가 심의관 등의 요청에 따라 재판절차나 내용을 변경한 행위

박판규 변호사는 “앞서 본 주장의 핵심은 6번 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부적절하지만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라며 말했다.

박 변호사는 “하지만 2번ㆍ4번은 모두 직권남용죄가 되고, 그 객체는 3번ㆍ5번이다. 즉 2번 지시에 따라 3번(문건작성)을 한 경우, 4번 지시에 따라 5번(재판부에 요청)한 경우는 모두 직무의 외관을 가지고 심의관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경우에 해당하고, 모두 죄가 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또 “6번에 관해서도 (검찰이) 증거를 통해 인과관계를 밝힌다면, 유죄 입증이 가능하므로, 법리상 안 되는 것도 아니다”고 봤다.

박판규 변호사는 “남은 1번은 임종헌 전 차장에 대한 윗선 수사에 달려 있고, 다른 증거를 검찰이 확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1번을 밝히든 못 밝히든 임종헌 전 차장을 처벌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박 변호사는 “(임종헌 측의) ‘부적절하긴 했지만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은, 법리적인 주장이라기보다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표현한 것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애잔하다”고 측은해 했다.

한편, 판사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서기호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는 페이스북에 박판규 변호사의 글을 공유하며 “사법농단 직권남용죄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하셨네요. 임종헌의 구속을 계기로, 분위기 반전입니다”라고 말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 센터장인 염형국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박 판사의 글에 “저도 법원의 대응이 참으로 안타깝고 애잔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박판규 변호사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박판규 변호사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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