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집총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처벌조항에서 규정하는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번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병역법 위반 유죄의 판례를 무죄로 변경했는데,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처벌조항에서 규정하는 정당한 사유의 해석론을 판시한 최초의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4년 7월 판결 이후 병역법 처벌 조항에 대해 유죄 판례를 확립했으나, 이번에 14년 만에 판례가 변경됐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오승헌(34)씨는 2013년 7월 18일 ‘2013년 9월 24일까지 육군 39사단에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경남지방병무청장 명의의 현역병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하지 않았다. 오승현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입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2013년 10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을 적용해 오승현씨를 기소했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본문에서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1심인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2014년 2월 12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승헌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이에 오씨가 항소했으나, 창원지법 제1형사부(항소)는 2016년 6월 23일 오승헌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 형량을 유지했다.

이에 오승헌씨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헌법 제19조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에서 정한 양심의 자유에 따른 것이므로, 자신에게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8월 30일 공개변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 종전 판례 변경시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내용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1일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종래 판례에 따라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고 종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9(무죄 취지) 대 4(유죄 상고기각) 의견으로 오승헌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로 돌려보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대법원과 하급심에 계류된 관련 사건의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 현재 대법원에는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사건이 227건 계류돼 있는 등 전국 법원에 930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판례를 변경시킨 대법관들의 다수의견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것인지는 헌법 제19조의 양심의 자유 규정과 헌법 제39조 국방의 의무 규범 사이의 충돌과 조정의 문제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라는 문언의 해석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헌법상 국방의 의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단지 국방의 의무를 구체화하는 법률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으로 정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이행을 거부할 뿐, 그 이행이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기 때문에 불이행에 따른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하고서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수의견은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짚었다.

또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민 다수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 신념에 선뜻 동의할 수 없더라도 이제 이들을 관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따라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그러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이와 달리 판단한 대법원 2004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2004도2965), 2007년 대법원 판결(2007도7941)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고 판시했다.

다수의견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는 대체복무제의 존부와 논리필연적인 관계에 있지 않고,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을 때 제기될 수 있는 병역의무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 된다”며 “현재 대체복무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거나 향후 도입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병역법 제88조 제1항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관 다수의견도 “국방의 의무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보다 더 우선되는 의무로,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유지는 국민의 기본권 실현과 보호를 위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은 분명히 하면서 “우리나라의 병력 규모,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수와 현실적으로 그들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할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한다고 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이 우려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조만간 대체복무제 도입이 입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는 병역거부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제한에 있어 최소 침해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다수의견은 “진정한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경우에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규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대체복무의 허용은 국가의 안전보장에 우려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며 “그러므로 향후 국가안전보장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면 다시 그들을 현역병입영대상자 등으로 하는 병역처분을 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다”는 점도 밝혀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

◆ 대법관 4인(김소영, 조희대, 박상옥, 이기택)의 반대의견

반대의견 대법관들은 결론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 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대의견은 “병역법의 입법 취지와 목적, 체계, 병역의무의 감당능력에 관련된 규정들의 성격에 비추어,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는 특정한 입영기일에 입영하지 못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 즉 당사자의 질병이나 재난의 발생 등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에 한정된다”며 “따라서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적인 신념이나 가치관, 세계관 등과 같은 주관적 사정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를 내면적 자유와 외부적 자유로 구분하고, 내면적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호되지만 외부적 자유는 다른 헌법적 가치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법리를 확립해 왔다”며 “이러한 법리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으나 소수에 그쳤다.

반대의견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비록 소극적 부작위이기는 하지만 역시 자신의 양심을 외부로 실현하는 행위이므로, 국가안전보장과 국방의 의무 실현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며 “이러한 제한이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거나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다”고 말했다.

또 “병역의무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서 형사처벌 등 제재가 갖는 규범적 타당성에 비추어 볼 때, 다수의견이 소극적 부작위에 의한 양심 실현의 자유에 대해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 자체를 마치 위헌, 위법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반대했다.

특히“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엄중한 안보상황,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 등을 감안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대의견은 “대법원의 종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확인된 법리는 유지되는 것이 옳고,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만한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도 없다”며 “다수의견의 견해는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으로서, 갈등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이동원 대법관, 다수의견에 보충의견

이와 함께 이동원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보충의견’을 밝혔다.

이동원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자신의 절박한 양심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에게 병역의무의 이행을 강제하고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한다면,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양심을 지키느냐 아니면 양심을 버리고 형사처벌을 면하느냐는 선택만이 존재하게 된다”며 “입법자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당한 사유’라는 문언을 통해서 그러한 통로를 열어두었고, 병역의무의 이행에 관한 구체적, 최종적인 정의의 실현을 사법부에 위임했다”고 말했다.

이 대법관은 그러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최소한의 소극적 부작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는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그 권리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다를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며, 이로써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자유권규약은 헌법 제6조 제1항에 의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직접적인 재판규범이 되며, 국제평화주의와 국제법 존중주의는 국가질서 형성의 기본이 되는 헌법상 중요 원리”라며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헌법 제6조 제1항에 기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자유권규약 제18조에 따라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국제인권규약에 조화되도록 법률을 해석하는 것은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사법부가 지켜야 할 책무이며, 헌법상 국제법 존중주의에도 합치된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 김소영ㆍ이기택 대법관, 반대의견(4명)에 대한 보충의견

김소영ㆍ이기택 대법관은 “다수의견은 종래 인정돼 오던 양심의 범위를 더욱 좁혀서 양심의 ‘깊고 확고하며 진실함’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특정 종파의 병역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법이 보호하는 양심의 범위를 근거 없이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더욱 억제하는 것이 된다”며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종교의 신도가 늘어날수록 입대 군인이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군대가 없어지게 되면,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해줄 국가적 토대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책의 문제”라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띈 현행 병역법 조항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를 포함하는 국회의 개선입법을 기다려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에 대해 이 문제를 명예롭게 해결하고, 국민통합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 조희대ㆍ박상옥 대법관, 반대의견(4명)에 대한 보충의견

조희대ㆍ박상옥 대법관은 “우리나라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고 오히려 여러 차례 외세의 침략으로 큰 고통을 받았음. 이런 참혹한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 헌법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신성한 사명으로 규정하고, 국방의 의무를 모든 국민의 기본 의무로 규정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해 국방의 의무에 대한 일체의 예외를 헌법에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국가안전보장과 국토방위에 직결되는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은 매우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양심이나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자에 대해 국가가 대체복무 등 시혜적인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처벌규정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시켜 무죄선고를 가능하게 하는 해석론은 헌법에 위배되고 법리에도 맞지 않다”며 “확립된 헌법이론에 따른 합리적인 논증과 근거 제시 없이 상대적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헌법제정권자의 결단을 폄훼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두 대법관은 “병역을 거부하는 이유로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른 국가적 차원에서의 무장해제와 평화주의, 납세거부, 종교우월까지 연계한 주장을 펴는 피고인에 대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해 대체복무가 아닌 무죄선고가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며 “국군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침은 물론이고, 앞으로 병역법과 형사법 등 국가법질서에 큰 혼란과 폐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수의견이 예를 들어 종교적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의 경우에 적용될 것으로 제시하고 있는 요소들은 특정 종교의 독실한 신도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이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며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과 같은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 보장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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