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일 전범기업,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위자료 1억씩”
대법원 전원합의체 “일 전범기업,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위자료 1억씩”
  • 신종철 기자
  • 승인 2018.10.3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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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더]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소영)는 30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 신일철주금(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피고가 원고(피해자)들에게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원고 승소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피해자 4명(여운택ㆍ신천수ㆍ이춘식ㆍ김규수)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이번 소송을 제기한 2005년 2월 29일부터 무려 13년 8개월 만이자, 대법원에 재상고 사건이 접수된 2013년 8월 9일부터 5년 2개월 만이다. 4명의 피해자 중 3명 원고가 세상을 떠났고, 이춘식(94) 할아버지만이 현재 유일한 생존자이다.

이 사건 핵심쟁점은 1965년 한ㆍ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전원합의체 대법관 다수의견(7명)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1941년~1943년 일본의 제철소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이다.

2005년 1월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됐고, 원고들은 2005년 2월 29일 일본 기업인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송을 제기했다.

제1ㆍ2심 법원에서는 원고들이 패소했으나,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파기환송했다.

환송 후 제2심은 대법원의 환송판결 취지에 따라 피고가 원고들에게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고, 위자료 금액을 1억 원씩으로 정했다.

피고(신일철주금)가 이에 불복해 다시 상고를 제기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원고 2명은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에 앞서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제기했다가 일본 법원에서 패소 확정됐다. 이러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외국법원 판결의 승인 제도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다.

특히 핵심쟁점은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다.

그리고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할 수 있는지도 문제였다.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고,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다투었다.

청구권협정은 전문(前文)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라고 정했다. 제1조에서 일본이 대한민국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했다. 이어서 제2조 1.에서 “…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정했다. 제2조 3.에서는 “…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 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 환송판결 및 환송 후 제2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일본 법원의 판결은 그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에 행사할 수 있으며,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대법관 사이에 견해가 갈렸다.

대법관 다수의견(7명)은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봤다.

다수 대법관들은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라며 “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했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해 인력을 확충했다.

대법관들은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해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다수 대법관들은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해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했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해야 했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외출이 제한되고 상시 감시를 받아 탈출이 불가능했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며 “이러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관들은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또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됐다”며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포함된 것이라고는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기택 대법관은 별개의견에서 “이미 환송판결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므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해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이다.

이기택 대법관은 “환송판결의 기속력(상급법원의 판단에 하급법원이 따라야 하는 것)은 환송 후 제2심뿐만 아니라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이라며 “환송 후 제2심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 등에 의해 환송판결의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겼다면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 것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 환송판결에 예외적인 사정이 없으므로, 환송판결과 같은 결론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소영ㆍ이동원ㆍ노정희 대법관도 별개의견을 개진했다.

이들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다만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다”며 “따라서 원고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이다.

권순일ㆍ조재연 대법관은 파기환송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된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해 가지는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원고들이 일본 국민인 피고를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된다”고 밝혔다.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김소영ㆍ이동원ㆍ노정희 대법관의 별개의견과 같다.

두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해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한다”며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피해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다”면서다.

대법관 다수의견(7명)에 대한 김재형ㆍ김선수 대법관의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는 취지의 보충의견이 있었다.

한편, 대법원 관계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2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환송판결을 선고한 이후, 판결에 대해 학계 등에서 찬반을 둘러싼 여러 논의가 있었고,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포함됐다고 볼 경우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인지,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해 포기되는 것인지 등에 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 판결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피고가 원고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최종적으로 확정시켰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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