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삼성에 단단히 뿔났다. 민변(회장 정연순)은 9일 “법원 판결에 따른 보고서 공개를 방해하는 삼성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먼저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A씨는 2014년 8월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숨졌다. A씨 유족은 산업재해 입증을 위해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를 요청했으나, 노동부는 ‘기업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결국 2016년 A씨 유족은 노동부를 상대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는데, 항소심인 대전고등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항소심인 대전고법 제1행정부(재판장 허용석 부장판사) 지난 2월 1일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A씨 유족이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공개를 통해 해당 작업장의 공정 및 어느 지점에서 유해화학물질 등의 유해인자가 검출되어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은 망인을 비롯해 해당 작업장의 전ㆍ현직 근로자들의 안전 및 보건권의 보장, 나아가 해당 작업장이 위치하고 있는 인근지역 주민들의 생명ㆍ신체의 건강 등의 가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판단된다”라며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노동자와 인근주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공개되어야 함을 명백히 했다.

재판부는 “측정위치도는 삼성전자의 경영ㆍ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또한, 이 사건 측정위치도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생산방법 등에 관한 기술적 노하우가 유출되거나, 거래업체들 또는 경쟁업체들에 의해 삼성전자의 생산능력에 관한 정보가 이용당함으로써 삼성전자의 경쟁력이 약화돼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서 정한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이 사건 보고서에는 라인명과 공정명, 근로자수 등이 기재돼 있을 뿐 공정간 배열이나, 각 생산라인에 배치한 설비의 기종 및 보유대수, 생산능력, 설비배치, 공정 자동화 정도, 인건비 관련 자료, 각 공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ㆍ사용량ㆍ구성성분 등에 관한 기재는 별도로 없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그 정도의 정보만으로는 피고가 우려하는 ‘삼성전자 온양공장의 공정 간 배열, 각 라인에 배치한 설비의 기종 및 보유대수, 생산능력, 반도체 후공정 자동화를 통한 인건비 절감 효과 등의 정보’, ‘제품 생산을 위하여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 사용량, 구성성분 등의 정보’ 등까지 알려지게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렇게 재판부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세부 항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피며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고용노동부는 대전고법의 항소심 판결을 수용하며 상고를 포기했다. 보도자료를 내고 노동자의 생명ㆍ건강에 필요한 정보는 향후에도 적극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B씨는 삼성디스플레이(주) 탕정사업장에서 일하다 퇴직 후 비호지킨림프종이 발병했다. B씨는 질병이 탕정사업장의 유해물질 노출 때문임을 증명하기 위해 지난 2월 20일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에 해당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보여 달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천안지청은 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삼성은 국민권익위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위원장 직무대행은 직권으로 정보공개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그런데 민변 노동위원회(위원장 김진 변호사)에 따르면 삼성은 행정소송도 제기했다. 삼성은 탕정사업장 외에도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과 화성사업장 보고서에 대해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기흥과 화성, 탕정 보고서를 신청한 이들은 백혈병, 림프종 피해자나 유족과 이들의 산재신청 대리인들이다.

이와 관련, 민변 노동위원회는 “삼성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의 세부내용에 대한 영업비밀 해당 여부는 이미 밝혀졌다”며 “지금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에 대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제기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태도이자, 삼성직업병 피해자를 부정하고, 그들의 피해를 가중시키는 행위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가장 나쁜 점은 삼성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삼성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변은 “또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삼성의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부정”이라며 “삼성은 지금이라도 직업병 피해자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민변 노동위원회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 유족, 대리인들과 함께 끝까지 연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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