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이진성 헌법재판소 소장이 재판관 6년의 임기를 마치고 19일 퇴임했다. 이진성(사법연수원 10기) 재판관은 작년 11월 27일 헌법재판소장에 취임해 10개월 동안 임무를 완수했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19일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헌법재판소)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19일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사진=헌법재판소)

이날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진성 헌재소장은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권을 가진 기관이지만 그것은 권력이나 권한일 수 없다”며 “재판다운 재판을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일 뿐이다. 권력으로 생각하는 순간 삼가지 못하고 오만과 과욕을 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헌재소장은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구성에 관해 어떠한 권한도 없다. 이 점에서 재판관 지명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의 입김에 흔들릴 것을 염려하는 시각이 있다”며 “하지만 권한이 없는 까닭에 헌법재판소는 다른 기관과 구성에 관해 협의할 일이 없다. 오직 재판관들이 재판소 구성권자와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하게 지님으로써 헌법재판의 독립은 확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그러면서 “헌법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반석 같은 신념을 더욱 강고하게 가져 주기 바란다”며 “독립성을 바탕으로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헌법재판을 더욱 발전시켜 주기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를 떠나는 이진성 헌재소장(사진=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를 떠나는 이진성 헌재소장(사진=헌법재판소)

이날 이진성 헌재소장과 김이수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 안창호 재판관, 강일원 재판관의 동시 퇴임으로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의 자리가 공석이 된다.

한편,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유남석 헌재소장 후보자와 김기영ㆍ이영진ㆍ이종석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은 오는 20일로 예정돼 있다.

퇴임사 하는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사진=헌법재판소)
퇴임사 하는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사진=헌법재판소)

<다음은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퇴임사 전문>

우리 헌법재판소는 올해 창립 30주년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30년의 시간 중 6년 동안 재임하면서 선배, 동료들께서 이룩하신 빛나는 업적에 힘입어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헌법 수호라는 재판소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의 불모지였던, 척박한 토양에서 지금의 헌법재판소를 일구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떠날 때는 말없이’가 이 자리에 맞는 말이지만, 더 이상 기회가 없으니 몇 마디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공직자이면서도 내면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자유로워지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자유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헌법을 연구하고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사람은 더욱 그러합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권을 가진 기관이지만 그것은 권력이나 권한일 수 없습니다. 재판다운 재판을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일 뿐입니다. 권력으로 생각하는 순간 삼가지 못하고 오만과 과욕을 부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논리만을 고집하며 그 논리에 갇혀 있을 수 있습니다. 헌법을 거울삼아 우리의 마음을 열어 국민들의 목마름을, 간절한 마음을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구성에 관하여 어떠한 권한도 없습니다. 이 점에서 재판관 지명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의 입김에 흔들릴 것을 염려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한이 없는 까닭에 헌법재판소는 다른 기관과 구성에 관하여 협의할 일이 없습니다. 오직 재판관들이 재판소 구성권자와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하게 지님으로써 헌법재판의 독립은 확보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반석 같은 신념을 더욱 강고하게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독립성을 바탕으로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헌법재판을 더욱 발전시켜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동료 재판관, 훌륭한 자질과 뛰어난 능력을 지닌 헌법연구관과 직원 모든 분들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각자 동등한 지위로 직책을 수행하는 헌법재판소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더욱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 있게, 하지만 겸허하게 사명을 수행하기 바랍니다.

40년 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첫 날 아침, 책상 위에 써놓았던 삼갈 신(愼) 한 글자를, 지난 세월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초심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잊지 않고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김종삼 시인은 ‘물 통’에서 노래하였습니다.

판사로서, 재판관으로서, 그리고 재판소장으로서 미력이나마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고, 정의롭게 되도록 애썼지만, 그 시인만큼 물 몇 통이라도 길어다 드린 것일까요? 재판소장으로 취임하면서 단 하루를 일하더라도 6년을 일하는 것처럼 책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절실한 목마름에 모두 응답할 수는 없었지만, 재판권을 맡겨주신 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드리려 힘썼다는 것에 작은 보람을 느낍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물정 모르던 제가 세상 이치를 깨우치고, 모자란 것을 채워 판관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제게 배움터이자, 제2의 집이었습니다. 존 바예즈의 노래 중에 Brown leaves falling around and snow in your hair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 저녁녘인 이 마당에 아직도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이 정도라도 채우고 떠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누구보다도 제가 공직자의 금도를 지킬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준 아내와 가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동안 다른 분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느라 정작 가족의 기본권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공직자 가족으로서 기본권을 침해받아, 항상 미안했던 가족에게 지금이라도 행동자유권과 같은 기본권을 회복시켜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더 나이 들수록 따뜻하고, 너그럽게, 유머와 위트로 살아보렵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이제 헌법재판소를 떠나지만, 오늘처럼 맑은 어느 날, 저를 품에 안아주었던 북악산 말바위에서 불어와, 재판소 마당을 스치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으로, 가끔 여러분 곁에 찾아오겠습니다.

사랑하는 헌법재판소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헌법재판소장 이진성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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