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정의당 대표인 이정미 국회의원이 3일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를 처벌’하는 “거부 의사에 반하는 강간죄”를 도입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미투 운동의 취지를 지원하고자, 노회찬 의원이 발의를 준비해온 법안이라고 한다.

이정미 대표(사진=정의당)
이정미 대표(사진=정의당)

이와 관련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이정미 의원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 1심 당시, 두 가지 문제가 지적됐다. 재판부는 첫째로는 대선 후보이자 상급자인 안 전 지사에 의해 위력이 행사되지 않았다고 봤고, 두 번째로는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없었다는 이유로 강간이 아니라고 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의원은 “하지만 이는 성폭력이 행사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법원이 저항 등이 있을 경우에만 강간으로 보는 이른바 최협의설에 입각해 판결해 왔다”며 “그러나 가해자의 폭행ㆍ협박으로 공포감을 느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경우, 저항으로 인해 더욱 심각한 폭행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돼 저항하지 않은 경우, 또는 수치심에 구조를 요청하지 않은 경우 등 다양한 경우가 부지기수로 존재한다. 이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이번 형법 개정안을 제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정미 의원은 “이번에 발의하는 형법 개정안에서는 우선 기존 형법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를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의 죄’로 변경했다”며 “안희정 1심 재판부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권리가 아니라 개인이 보유할 것으로 기대되는 능력으로 왜곡했다면, 이 법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할 권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또 “둘째, 기존 강간죄를 ▲저항이 곤란한 폭행ㆍ협박에 의한 강간 ▲폭행ㆍ협박에 의한 강간, ▲명백한 거부의사 표시에 반한 강간죄로 구분해 처벌하고, 기존 추행죄도 ▲폭행ㆍ협박에 의한 추행과 ▲명백한 거부의사 표시에 반한 추행으로 구분하여 처벌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본래 강간이 사전적 의미로 동의 없는 강제적 성관계를 지칭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비동의 간음죄’는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없다”며 “이에 따라 본 법안에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강간죄의 하나로 처벌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정미 의원은 “셋째 형량이 낮아 현재 대부분 약식 재판으로 진행되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ㆍ추행의 경우에도 현행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15년 이하의 유기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을 강화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번 법안은 성폭력 범죄에 관한 법률 체계를 정비하는 목적 또한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특정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때그때 법안 개정이 이뤄져 와서 현재 형법,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유사한 성범죄 규정이 분산돼 있는 형편”이라며 “이를 ‘형법’으로 통합하고 성범죄 규정들을 폭력의 강도 및 종류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아청법과 성폭법을 포함한 3개의 법안을 같이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정미 의원은 이 법안의 제출 의미와 관련해 세 가지 점을 강조했다.

이정미 의원은 “먼저, ‘거부 의사에 반하는 강간죄’가 도입이 된다면 ‘그러면 성관계를 할 때마다 물어봐야 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피해당사자에게 커다란 수치심과 절망감을 안겨주는 범죄이지 무슨 무용담이나 자랑거리가 아니다”며 “‘동의가 없다면 성관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둘째로 이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이 법은 남성 기득권에 갇힌 사법부에 의해 미투 운동이 좌초하는 것을 막고, 보다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고자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거부 의사에 반하는 강간죄의 도입은 안희정 전 지사 개인이나 그가 속했던 정당을 향한 정치적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되며, 철저히 ‘여성 인권의 보호’라는 관점에서 이 법안이 다뤄져야 한다”며 “그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혀 온 만큼,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 처리가 되도록 협조를 요청 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정미 의원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 법안은 ‘입법이 미비’하여 안 전 지사를 처벌할 수 없다는 1심 재판부의 결론에 대한 동조가 아니라는 점을 확고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물론 ‘거부 의사에 반하는 강간죄’가 도입된다면 안 전 지사를 처벌할 수 있게 된다”며 “하지만 ‘거부 의사에 반하는 강간죄’가 없어서 현행 법체계에서 안 전 지사에 대한 처벌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번 재판의 쟁점이 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일본과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법으로,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을 처벌할 수 있게 해 놓은 법”이라며 “위력은 있었지만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취지 자체를 위협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많은 문제가 제기됐고, 이미 다른 판례가 존재하고 있는 만큼 상급심에서는 위력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이 내려져야만 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안희정 재판은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면죄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미 의원은 “오늘 발의하는 이 법은, 이번 안 전 지사 판결과 무관하게, 올해 초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미투 운동의 취지를 지원하고자, 고(故) 노회찬 원내대표께서 발의를 준비해 오신 법안”이라며 “법안 발의에 정의당 5명 의원과 김현아, 소병훈, 우원식, 유은혜, 장정숙 의원님이 함께 해주셨다”고 소개했다.

이 의원은 “올해 ‘미투’ 법안을 하나도 처리하지 못한 국회가 이번 정기 국회에서는 이 법안을 제대로 처리해서, 여성들의 용기에 응답하고 성평등 사회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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